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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QT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2)

Jul 06, 2015 10:01 PM EDT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함께 계신 하나님

우리 안에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 있지만 죄악의 세상에서 불의한 압제자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쉽게 자포자기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죄악의 세상이 끝나지 않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은 없다. 진리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들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수용소에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리스마스에 기이한 일을 행하셔서 그들에게 홀연히 해방과 자유가 임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 날이 되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자신들의 꿈과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앞으로도 악한 세상이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절망감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이처럼 의의 세상,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의 상실을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옵니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일가족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형에 처해지게 됐습니다. 형이 집행되자 부모는 곧바로 죽었는데, 어린 아이는 줄에 목이 매달린 채로 죽지 않고 고통 속에서 발을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유대인이 "하나님은 결코 없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우리를 구원하지 않고 이토록 참혹한 고통 가운데 버려두시는가?"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한 사람이 "하나님은 바로 숨이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고통 받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몸부림 안에서 함께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참혹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 당하고 계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울부짖음과 눈물에 함께 하시는, 아니 그들보다 더 고통가운데 아파하셨던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무지와 미움 속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참혹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절규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고 하시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시고 몸부림 치셨지만, 그 상황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지하고 죄악된 자들에 의해 고통 받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이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아셨습니다. 자녀가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은 더 찢어집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참혹한 십자가의 자리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참혹한 십자가의 자리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은 바로 하나님의 고통이었습니다. 또한 주님은 의로운 자의 십자가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을 가져온다는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의 역사를 열어내며, 죄악의 세상이 심판 받고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참 신앙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그 한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죄와 어둠으로 얼룩진 시대를 사셨던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 가운데 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지키고 붙들고 계시며, 우리의 고통의 한 가운데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고통의 너머에서 또 다른 문을 열어 새로운 의의 역사를 열어 가십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 새로운 여명이 열리고, 그를 종국에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비록 그의 세대에는 아닐지라도, 그러한 의인들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이 땅에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악에 굴복하지 말고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편, 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역사에 자랑스럽고 위대한 이름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쉽게 절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속세를 떠나서 홀로 살아가거나, 세상 속에 파묻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일상적인 생활인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정치적인 열광주의Enthusiasm에 빠져 세속적인 방식을 통해서 의의 세상을 이루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종교적인 열광주의 Apocalyptic Fanaticism or Religious Fanaticism에 빠져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하늘로부터의 변화가 임하기만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은 고통 가운데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눈물로 한 알의 밀을 심어야 합니다.(마13:31-32) 그리고 그것이 큰 나무가 될 때까지 인내하며 아름다운 결실을 기다려야 합니다.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서서 공의와 정의가 흐르는 나라를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울며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시126:5-6)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2)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과 타는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를 구체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내어놓음이 있어야 합니다. 죄악의 세상 가운데 타협하거나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럴수록 더욱더 간절히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고,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한 알의 밀처럼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까? 의에 대한 목마름과 주림, 그리고 쓰라림이 있습니까? 절망의 자리에 우리의 신앙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반드시 생명과 의와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잠21:21)

기도

사랑의 주님,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 고통 당하는 저를 보시며 함께 아파하시고 고통 당하시는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제가 악한 세상 속에서 더욱더 의를 사모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과 소망을 버리거나 죄와 타협하는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썩어지는 삶을 살게 하여 주소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배부르게 하시는 한 날이 오기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더욱더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을 가지게 하여 주소서. 제 안에 있는 이 갈망이 어느 한 순간 사라질 신기루가 아니라 저의 생명을 걸고 지켜나가는 것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하기

1. 의가 실현되지 않는 타락한 세상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기 쉽습니까? 그러나 의인들이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2.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잃어버릴 때 일어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간절한 기다림과 갈망이 당신에게는 살아있습니까? 그리고 그 나라가 오기까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