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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QT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4)

Oct 12, 2015 10:44 AM EDT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형제의 죄책을 덮는 긍휼의 마음

긍휼은 또한 형제의 죄책을 위로하고 덮어주며 정죄치 않는 따뜻한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자신의 분깃을 요구하며 아버지의 곁을 떠났던 둘째 아들의 삶은 죄와 고통으로 점철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허랑방탕하게 아버지께서 주신 귀한 것을 허비함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서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눅15:13-19)  이처럼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 그 보호하심에서 떠난 사랑의 결핍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이 겪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들 안에 깊은 죄책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 안에 있는 죄가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아픔과 고통, 죄책감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형제를 향한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 두려움, 죄책감을 감싸고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긍휼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만 열려 있는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을 향한 깊은 긍휼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죄로 인해 고통 당하던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그를 불쌍히 여겨 상거가 먼데 아들에게로 달려가 안고 울며 입을 맞추었습니다.(눅15:20) 그리고 송아지를 잡고, 새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우며 깊고도 뜨거운 사랑으로 맞아주었습니다.(15:22-24) 아들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더 큰 사랑으로 덮으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 큰 사랑 앞에 탕자는 다시 아들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둘째를 향해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눅15:25-30) 그는 둘째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아버지에게 분노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안에 있었던 따뜻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마태와 함께 잔치를 벌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마9:10-11)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고 경건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님 안에 있었던 형제를 향한 긍휼의 마음, 따뜻한 사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세리는 사람들로부터 극한 미움을 받는 자였고, 그들의 죄로 인해 철저히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서 미움을 받아 마땅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며 신음하고 있는 영혼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치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죄로부터 구원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로 변화시켜주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 안에는 형제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함부로 죄인이라 단정짓고, 그를 심판대 위에 세워 조롱하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형제를 향한 무자비하고 무정한 마음이 있습니다. 탕자인 동생을 바라보았던 첫째 형, 그리고 세리와 창기 등을 바라보았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그들은 죄를 범해 고통스러워하는 형제를 감싸 안으려고 하기보다 차갑게 정죄하고 철저히 격리시키려고만 합니다. 죄책감 가운데 있는 영혼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깊은 죄책감 가운데 있는 형제들은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결국은 죽음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형제를 향한 긍휼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수렁에서 건져내야 합니다. 깊은 죄책감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죄 많은 영혼들은, 자신을 향한 사랑과 따뜻한 영접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주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으라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마23:23)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13)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긍휼을 힘써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에게는 긍휼의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긍휼의 마음을 알고, 그것으로 인해 형제를 감싸고 위로할 수 있는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열성적으로 종교 의식만을 행했을 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셨던 의와 인(긍휼), 신(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시고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신다]"(호6:6)고 하셨습니다. 제사보다, 제물보다 큰 것이 인애(긍휼)라고 하셨습니다. 긍휼은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산 제사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과 긍휼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어떤 제물보다,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큰 제물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사랑 안에 거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진정으로 순종하는 것은 형제에 대해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모든 율법 중에서 첫째가 무엇이냐며 질문한 서기관에게 예수님은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막12:29-31) 그러자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이 참이라고 증거하며,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12:33)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막12:34) 고 그의 지혜로움을 칭찬해주셨습니다. 신앙의 모든 본질과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여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형제들에게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제가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형제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거짓되고 형식적인 제사만을 드렸던 모습을 용서하여 주소서. 하나님은 그 어떤 제물보다 형제를 향한 긍휼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형제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제 안에 긍휼을 잃어버림으로 무정하고 무자비한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게 하소서. 영혼들 안에 있는 죄책을 위로하고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을 가지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하기

1.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주님 안에 있는 긍휼을 가지지 못하고 바리새인처럼 무정하고 무자비한 모습은 없습니까?

2. 하나님께 진정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 순종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형제들을 생각하며, 진정한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