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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QT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4)

Jan 11, 2016 08:43 AM EST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함

진정한 마음의 청결함, 깨끗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의 순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실재, 사랑을 우리의 영혼으로 뜨겁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36:9)"라고 했습니다. 시편의 이 짧은 구절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고 했습니다.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안다는 것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내 사랑만으로 그를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마음을 열어서 자신을 보여줄 때, 그와 함께 대화할 때, 그를 진정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여실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하지만.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흐릿하게만 알려줄 뿐, 우리에게 뚜렷하게 알려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말할 수 없는 죄를 범한 죄인도 정죄치 않으시고 사랑하사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아셨습니다. 신앙이란 그 사랑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참된 신앙의 세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이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 빛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친밀감

바울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주를 온전히 알리라"고 했습니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며,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처럼 너무나 투명하고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멀어졌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이처럼 가까워지고 친밀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창3:17, 3:6, 3:22-24)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되었어야 할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후 지식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냐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3:8)고 했습니다. 지식이 있고, 고상한 지식이 있습니다. 고상한 지식이란 십자가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십자가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담이 이 고상한 지식, 사랑의 세계를 알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열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은 세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들 안에는 지적인 교만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지식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을 배웠고, 그것이 진정한 진리이며 생명임을 알았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이고, 부활은 생명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떡을 뗄 때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떡은 찢어져 없어지지만, 그들 안에 들어가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살리기 위한 그리스도의 삶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세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고통과 눈물과 비움, 그 사랑으로 말미암은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가 새롭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의 청결을 불교의 청정심, 무아지경과 같은 개념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깊은 체험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라"(시11:7)고 했습니다. 바른 자는, 즉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 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고 했습니다. 쇠는 쇠와 통하고, 나무는 나무와 통하는 것처럼 영은 영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보려고 할 때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질 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빛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딤전6:15-16, 고후4:6) 그런데 인간이 빛 자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눈은 직접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프리즘을 통해서만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프리즘과 같으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더 온전히 알아가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제가 주님을 알기도 전에 먼저 사랑하여 주신 그 사랑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은 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십자가의 희생이었고, 나를 위한 눈물과 고통이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기 원합니다. 그 사랑이 바로 나를 향한 놀라운 주님의 사랑임을 더욱더 온전히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진정한 사랑을 돌려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항상 주님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며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하기

1.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체험할 수 있습니까?

2.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당신에게는 이런 친밀한 사랑의 세계가 열려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