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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QT 율법의 완성(3)

Jun 11, 2016 02:44 AM EDT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것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

인류의 종교와 사상, 철학 등은 모두 이전의 것을 토대로 해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와 힌두교와 같은 종교도,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종교로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와 힌두교의 기본이 되는 토대가 있었는데, 그것이 마누의 법전입니다. 기독교에서 보면 복음이 나오기 전에 율법과 같은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토대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오게 된 것처럼, 마누의 율법을 토대로 힌두교와 불교가 나온 것입니다.

복음도 율법을 토대로 나오게 된 것이며, 기독교는 유대교를 토대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고 나오시는 과정에서 복음의 시대에 앞서 율법의 시대를 먼저 열어내셨습니다. 무법에서 율법의 시대를 열어내신 것입니다. 죄가 죄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죄가 죄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을 기초로 해서 더 새롭고 깊이 있는 말씀을 우리에게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가르침, 이전보다 높은 차원의 가르침이 등장했을 때 이전의 가르침들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폐기 시킴으로, 이전의 가르침 안에 있는 깊은 지혜를 보지 못하고 옛 것과 새 것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해 신앙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옛말에 "천둥이 치면 배꼽을 떼 간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배를 내놓고 있다가도 천둥이 치면 모두 배꼽을 가렸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란 한 사람이 커서 과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둥이 치는 것과 배꼽이 떨어지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그 말은 거짓말이야, 천둥이 어떻게 사람의 배꼽을 떼어가니? 양전기 음전기가 부딪혀서 천둥이 치는 거야. 그러니 천둥이 쳐도 배꼽을 내놓고 다녀도 괜찮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말 같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둥이 치면 배꼽이 빠진다는 옛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천둥이 치면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워져서 감기에 걸리기 쉽고, 감기에 걸리면 배꼽이 빠지도록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가 오면 자신의 몸을 잘 보호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전 사람들의 깊은 삶의 지혜가 녹아져 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서 나온 새로운 가르침으로 인해 이전부터 내려온 소중한 삶의 지혜가 가려지고 폐기처분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바라볼 때 문제가 됩니다.

힌두교에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신이시여, 제게 복을 내려주시면 한 마리의 이도 남김없이 잡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매일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듣고 있던 오래 된 수도승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당신이 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거야, 신에게는 이가 없고, 신은 음식도 먹지 않아."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기도가 완전히 막히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시대에 있는 사람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잡아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최고의 봉사와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시대에 자신이 배고파 죽을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드리겠다는 것은 매우 큰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승이 너는 신을 잘못 알고 있고 너의 기도는 틀린 기도다. 그런 기도는 신이 받지 않는다."고 책망함으로 인해 한 영혼이 신께 더 이상 기도를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경건한 자의 기도가 유식한 스승으로 인해서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서도 자주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새 것이 나오면 이전의 것들아 다 파괴해 버렸던 크루세이드 멘탈리티Crusade Mentality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의를 내세워 무차별적인 파괴를 자행하고, 이전의 모든 것을 황폐화하기 위한 잔인한 폭력의 행사를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군 원정이 강행된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십자군이 들어가는 곳마다 이전의 모든 것이 다 불살라져서 유럽과 팔레스타인 등지가 완전히 불모지가 될 정도로 황폐해졌습니다.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선교사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의 토속 문화를 말살시킨 것 또한 크루세이드 멘탈리티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방의 우상적인 요소를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것을 모두 파괴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군 정신이 아니라 십자가 정신입니다, 이전의 것에서 창조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계승해야 합니다.

옛 것에 대해 새로운 것이 등장했을 때 항상 충돌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충돌은 비극적이게도 옛 것과 새것 중 하나의 희생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을 때도 율법을 가르쳤던 당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큰 위협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지도자들과 정면충돌하지 않으시고,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놀라운 시각과 자세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을 처음 시작할 때, 이전의 것들과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심하게 됩니다. 신앙을 시작하면 이전의 모든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까? 물론 배설물처럼 철저하게 버려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빌3:8) 그러나 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차원 승화되고 변화되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더욱더 멋있고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청산해야 할 것과 계승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나누어서 볼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힘써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저에게 버려야 할 것과 계승해야 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제 안에 잘못된 교만으로 인해서 지난 과거의 것들이 저에게 주는 귀한 삶의 지혜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과거의 것은 모두 낡았기 때문에 무시하거나 폐기시켜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이전의 소중한 것을 계승해서 더욱더 온전케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하기

1. 옛 것과 새 것이 충돌할 때 흔히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2. 크루세이드 멘탈리티의 문제점에 대해서 묵상해봅시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3, 당신 안에는 기존의 것을 창조적으로 잇고 계승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릴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습니까? 이 문제에 있어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