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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QT 율법의 완성(4)

Jul 20, 2016 11:53 PM EDT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법과 새 법의 올바른 관계

본문의 말씀은 율법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깊이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말씀은 항상 말씀이 선포되게 된 상황과 정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씨가 공중에 뿌려지는 것이 아니고 땅에 뿌려지듯, 주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허공을 향해서 선포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전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새 법을 선포하실 때, 예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제자들 안에 새 법이 나왔으니, 이제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죄에 대해 느슨해진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나타난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죄를 지어도 된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악이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럴 때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신앙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6가지 새 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기본전제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용서와 죄인을 향한 사랑을 이야기함으로 "나는 자유다. 율법은 사라졌도다. 이제 무법천지로 살아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명백하게 오해한 것입니다. 오히려 죄에 대해서 더욱더 엄격한 자세를 가지고, 그 누구보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의 것은 곧 나의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이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차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에 승차권도 사지 않고 기차를 탔습니다. 하루는 역무원이 그를 막았습니다. 그가 "왜 자신을 막습니까?"라고 묻자, 역무원이 그를 향해서 "표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역무원을 향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이 기차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서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은 철저하게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사회의 근간을 유지하는 법 자체를 깨뜨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율법의 기본 계명을 깨뜨리면서도 전혀 죄책감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상식인 기본적인 법과 도덕 행위도 지키지 않고 자신은 시키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가진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잘못 이해해서 사람을 죽이고 간음하는 등의 행위를 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런 죄를 범하는 자가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악이용해서 죄를 짓는 것을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빌미로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회적인 책임도 무시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무법천지와 같은 사람들을 합리화시켜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새 법을 전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그 누구보다 철저히 지키며 살아가려고 하는 자에게, 그것이 매우 옳은 것이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더 놀랍고 싶은 차원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자들이 많았고, 그래서 주님께서 해주신 말씀의 깊은 뜻을 지독하게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향해서 아주 심각하게 "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하셨습니다.(눅22:36) 이 말씀의 의미는 일상적인 삶을 내려두고 말씀으로 온전히 무장해 임박할 치열한 영적인 전투를 준비하라는 의미였지만, 제자들은 "주여, 여기 검이 두 자루 있습니다"라며 진짜 검을 가지고 왔습니다,(눅22:38)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는데, 제자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몇 년을 가르쳐도 주님께서 전해주시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이야기를 하신 것인데, 제자들은 그것을 문자적이고 육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제자들은 여러 해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며 삶을 함께 했지만 여전히 말귀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자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 새 법을 즉, 용서와 사랑의 세계에 대해서 전해주셨을 때, 제자들은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세로 인해 율법을 생명처럼 여겼던 유대인들과 불필요하게 마찰을 겪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새 법

예수님께서는 옛 법과 새 법을 대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새 법은 새 계약이고 마음의 돌비에 새겨준 법이자 성령의 법이지만, 이것은 이전 것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 것이다. 너희가 이 법을 잘 듣고 행해야 하며, 천국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너희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 법을 배우는 데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전제입니다. 우리는 옛 것을 귀히 여기고 충실히 이어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율법이 요구하는 바 본질적인 정신을 계승해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복음주의자는 결코 무법자가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율법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그것에 갇히지 않는 자일뿐입니다. 율법의 완성이 사랑임을 아는 자입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악이용해 죄를 범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방만하게 살아왔던 모습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율법을 가진 자들이 드러내는 의보다 더 수준 높은 의가 제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온전히 이루는 것이 복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복음의 깊은 세계에 눈 뜨게 하시고, 그리하여 율법을 넘어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하기

1.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을 오해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묵상해봅시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2.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용서를 악이용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도 지키지 않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