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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QT 성내지 말라(3)

Jan 17, 2017 07:46 PM EST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천국의 백성들이여, 형제간의 화목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적 의식, 종교적 행위 등 표면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의 초점을 더 깊은 곳으로 옮겨주십니다. 겉만 바라보고 있던 우리에게 마음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으로 승화되어 형제와 사랑 안에서 화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롬12: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산 제사, 영적인 제사는 형제를 사랑하며 살았던 우리의 몸, 우리의 삶입니다. 그 제사를 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께 진정으로 드려야 할 제사인 긍휼과 인애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형식적인 제사만 드렸지, 그것을 통해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신앙은 외식이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거짓된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들을 우리의 반면의 교사로 삼아 신앙의 외식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제사라는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제사,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자로서 이제 형제의 죄를 덮고 위로하는 것이 그 어떤 제사보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형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가 단지 제사를 위한 제사가 되어버릴 때, 그 제사는 오히려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됩니다. 

축복(祝福)이라는 한자 안에는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축복은 복을 빌어준다는 의미인데, 여기에서 빌 축(祝)자는 보일 시(示)자와 형(兄)자가 결합해서 형성된 문자로 '빌다, 드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형을 신(神) 앞에 보이며 제사를 드릴 때 진정으로 축복을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중국인의 문자 체계 안에도 진정한 제사는 형제와의 화해와 화목의 제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보여준 화해의 길

창세기의 주제는 아담의 범죄와 가인의 범죄, 즉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노아는 아담의 죄를 회복했던 자였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수고롭게 지으신 것을 아무런 수고 없이 받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고,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며 아담이 가지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과 순종의 모습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수고로움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묵묵히 방주를 지으면서 깨닫고 감사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습니다. 노아가 열어낸 회복의 역사의 터 위에서 그의 아들이었던 함은 형제간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제간의 화목을 이루지 못함으로 온전히 죄를 씻어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회복한 자가 야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승리자라는 뜻으로 야곱이 하나님께 새롭게 받은 이름입니다.(창32:28)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야곱이 형제와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승리자가 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야곱과 그 믿음의 삶을 계승해 승리한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삶을 보면,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얻은 후에 자신을 죽이려는 에서를 피해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야곱은 복을 빼앗긴 에서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의 울음소리를 기억하며 20년 동안의 라반의 집에서 고역을 견디며 모은 예물을 모두 형에게 드립니다. 그래서 에서와 아름다운 화목의 역사를 열어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났을 때, 형님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을 본 것 같다고 말합니다.(창33:10) 

야곱은 자신이 받은 복에 대해서 형의 복을 대신 받은 것이며, 그 복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께 받은 모든 축복을 자신에게 되돌려주는 야곱을 보며, 야곱이 자신의 복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대신해서 고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얼어붙었던 그의 마음이 녹아질 수 있었습니다.(창33:11) 그래서 야곱을 죽이려던 그가 오히려 변화되어 야곱의 앞잡이가 되겠다고 하며 야곱을 따뜻하게 영접했습니다.(창33:12) 이로 인해, 원수와 같았던 에서와 야곱이 화해하고 하나 되는 아름다운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형제간의 불화와 반목이 야곱과 에서 안에서 청산된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마음이 복을 받지 못한 자에게 가 있음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이 깊은 세계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화해의 정신, 화해의 역사를 타고, 그의 계대를 통해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우리도 은혜를 받았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전통이자 믿음의 계대 안에 흐르는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변질되고 퇴색될 때, 하나님의 복을 자신의 것으로만 취하고 가둘 때, 신앙이 외식화되고 형제에 대한 사랑, 인애와 긍휼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들이여, 너희는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형제를 찾아 화해한 후 다시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제사는 형제를 향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깊은 뜻과 소망을 알고 형제와의 화목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았던 야곱과 믿음의 열조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 동안 형제와의 화목의 삶을 살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예배만 드리고, 또한 단지 저의 축복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삶을 회개합니다. 또한 다른 이가 축복을 받으면 기뻐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했던 모습도 많았습니다. 제가 온전히 변화되어 믿음의 열조들의 삶을 온전히 계승해서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형제와의 진정한 화목의 역사를 열어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하기

1.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소홀히 하고, 외식적인 신앙을 해온 모습은 없습니까?
2. 야곱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승리자)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까?
3. 자신을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형을 사랑하고, 자신이 받은 복을 형에게 돌리며 끝까지 화해하고자 했던 '화해자' 야곱의 마음과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해봅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