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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QT "얼마를 주려느냐"

Mar 20, 2017 09:15 PM EDT

마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길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 사랑의 가르침을 받고 은혜 속에 있었던, 가까이 두었던 제자가 스승을 파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돈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요13:29) 돈은 아무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신임을 받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절대 사랑으로, 절대 믿음으로 제자를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믿었습니다.

그런 그가 스승을 팔게 되었습니다.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그 시대에 사람을 파는 일은 오직 노예시장에서만 있었던 일입니다. '은 30냥'은 지금으로 보면 몇 만원 밖에 되지 않는 적은 돈입니다.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아까워했던 유다가 단돈 30냥에 사랑의 주님을 노예와 같이 팔았습니다.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온 생명을 바쳐서 증거하려고 했던 하나님의 사랑은 어리석음입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를 감싸고 품고 치유했던 주님의 사랑에 아무런 이유가 없고 조건이 없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그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의 짐이 나의 짐이 됩니다. 그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기 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다 안에 몰이해와 오해는 이 사랑의 허비로 보는 데서 왔습니다. 한줌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판단했습니다. 유다 안에 '내가 옳았다'는 나름의 정의와 자기 신념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그가 주님을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팔고 나니 주님의 사랑이 생각이 났습니다(마27:3). 팔고 나니 '내가 옳지 않다'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이 괴로운 것이고 심판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을 만나는 접촉점인 양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추억은 지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도전과 비판이 그분의 사랑의 능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유다는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후회는 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그를 사랑했던 주님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가치 없는 것으로 존귀한 주님을 파는 죄를 범하지 맙시다. 우리가 믿음 위에 서서 주님의 사랑의 역사에 동참하며 가길 원합니다. 설사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넘어졌더라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는 자가 됩시다. 그럼으로 더 크게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드러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