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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QT 간음하지 말라(3)

May 10, 2017 09:28 PM EDT

마 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5: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우리 안에 일어나는 죄의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해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세상의 타락한 것으로부터 얻었던 기쁨이 한낱 구름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태초에 인간에게 불어넣어주셨던 사랑의 하나님의 숨결과 그로 인한 놀라운 생명력을 경험하면 우리 안의 육체의 소욕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집니다. 성령의 능력이 들어오면 죄악을 향해 불일 듯 하던 정욕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있습니다. 영은 이타적인 속성을 지니지만, 육은 이기적 속성을 지닙니다. 인간의 육은 될 수만 있으면 죄를 지으려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보는 관점은 매우 비관적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조금의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기적이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 있으면 자고 싶은 것이 인간의 육체의 본성입니다. 자꾸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향해서 눈이 가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손이 갑니다. 자신의 마음은 그것을 거부하려고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결국은 죄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가고 맙니다.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이런 모습을 깊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골수를 쪼개고 마음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옵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육체의 본성을 거스려 자신을 비우고 희생하고 절제할 수 있는 힘,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우리 안에 성령의 소욕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리고 성령의 바람이 우리 안에 불어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에게 있었던 육체의 소욕과 죄를 향한 욕망은 바람에 불면 먼지가 날아가는 것처럼 온전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구별됩니다.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 경건의 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고 했습니다. 경건한 삶이 우리의 삶의 습관이 되면 우리는 성령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고, 이로 인해 죄를 짓고자 하는 소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어느덧 풍성한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죄의 소욕을 넉넉히 이기는 삶

바울은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1:28-32)고 했습니다. 위의 본문에는 21개의 죄목들이 나옵니다. 이 모든 죄는 눈을 빼앗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눈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마음에 더럽고 죄악된 것들, 21개의 죄목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죄들로 가득한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눈으로 오는 유혹을 차단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세상과 구별되어 속된 것을 멀리하고 항상 깨끗하고 거룩한 것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습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타락한 세상이 만들어내고 있는 모든 문화가 우리의 유혹의 대상입니다. 연약한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혹의 마수가 곳곳에 뻗쳐 있습니다. 율법적인 종교에서는 볼 것과 안 볼 것을 구별하는 것이 극단화되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에서는 여성들에게 긴 복장을 입히고 차도르를 쓰게 하여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을 가리게 합니다. 불교와 같은 율법 종교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지 않도록 철저한 고행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속세로부터 철저하게 구별되어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죄를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소욕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심각한 부자연스러움과 사람들을 향한 그릇된 억압을 가져옵니다. 소극적으로 죄를 피하려고 하거나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죄를 짓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체념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에게 너무나 참혹한 일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를 짓기 싫어하는 마음, 죄를 이기고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을 때 순간의 쾌락이 있지만, 더 짙은 공허와 죄책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한다고, 죄를 아름답게 미화한다고, 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산다고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오직 죄를 짓지 않을 때, 죄를 극복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때 진정으로 인간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성령을 깊이 갈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 있을 때 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눈은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분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는 우리 마음의 간절함을 보시고 아낌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둘 셋 이상이 모여서 타락한 세상과 다른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갈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교제를 통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홀로라면 사단에게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연대감을 가지고 하나 되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힘쓸 때, 타락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문화가 꽃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나타나면 타락한 세상의 문화가 심판을 받고, 그리스도의 공동체 위에 함께 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어둠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없습니다. 한 시라도 걱정하지 않고 눈을 둘 곳이 없습니다. 곳곳에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사단의 덫으로 가득합니다. 현실과 가상 세계가 타락한 문화에 의해 모두 잠식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풀고 살아가면 우리의 마음과 눈이 타락한 것이 노출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안식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치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통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절실한 문제입니다. 진정한 코이노니아(친교)는 케리그마(말씀선포)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말씀을 기반으로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도 이런 일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기이한 기쁨과 은총을 저희 영혼에 가득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죄의 소욕을 이길 힘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항상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맛보아 세상의 죄악을 이기며 성령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되도록 함께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모든 영혼들이 진정으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타락한 세상과 다른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힘쓰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죄 가운데 쓰러지기 쉬운 저를 주님의 능력과 은총으로 인도하시고 함께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하기

1. 육체의 소욕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매일의 삶 속에서 먼저는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채우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봅시다.
2. 육체의 소욕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이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형제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3. 타락한 세상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타락한 문화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소중한 사명에 대해 묵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