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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1)

Aug 29, 2017 09:58 PM EDT

이 서신은 진실로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서 복음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 이 서신은 그리스도인이 시간을 들여서 한 단어 한 단어를 마음 속에 새겨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묵상할 가치도 있다. 이 서신은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며 아무리 자주 읽거나 많이 연구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당신이 이 서신을 더 많이 탐구하면 할수록 이 서신은 보다 더 귀하게 되며 그 향기가 더 좋아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이 서문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서신을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할 안내서가 되도록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서신은 논평들과 온갖 종류의 별 상관없는 것들로 덮여져 질식상태에 놓여 있었다 . 그렇지만 그 핵심에 있어서 이 서신은 성경 전체를 조명하기에 거의 충분할 정도로 밝게 빛나는 등불이다.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용어를 익히는 일이다. 우리는 율법, 죄, 은혜, 믿음, 의, 육, 영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성 바울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읽는다면 우리는 공연히 시간만 허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율법"이라는 용어를 일상적인 의미로, 즉 어떤 행위들이 허용되어 있거나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그 무엇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통상적인 법률들에 해당하는 바, 당신은 비록 법률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지 않아도 그것들이 명하고 있는 것을 겉으로 행함으로써 지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내면의 확신들을 따라 판단하신다. 하나님의 율법은 바로 당신의 마음 속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당신이 단지 어떤 행위들을 행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형벌들은 실제로 외식(hypocrisy)과 거짓말과 같이 우리의 내적인 확신들과 동떨어진 어떤 행위들에 적용된다.

시편 117편[116:11]은 모든 사람이 다 거짓말쟁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선함을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 속에서 발견되는 특징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함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으로부터 지키고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록 겉보기에 우리가 많은 미덕들을 행하고 영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듯이 보일지라도 죄가 들어오고 하나님의 진노가 불러일으켜진다.

그러므로 2장에서 성 바울은 유대인들은 모두 죄인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말하지만 그가 말하려는 요지는 아무도 율법을 "행위"를 통하여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22f].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 당신은 율법을 꼼꼼하게 지키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며 재빨리 모두 다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당신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알지 못하고 있다. 겉보기와 행실에 있어서 당신이 형벌을 두려워하거나 보상을 바라고 율법을 지킨다고 한다면, 당신은 자유로운 선택과 율법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서 그리고 강제 아래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 되고 만약 율법이 없다면 당신은 다른 식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이로부터 논리적 결론은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당신은 율법을 미워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도적이고 실제로 도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적질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물론 이런 유의 외적인 행실은 이런 유의 속임수로 인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당신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가르치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며 율법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아니 오히려 바울이 5장[:20]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율법은 당신의 죄를 증가시킨다. 사람이 율법을 미워하면 할수록 율법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더욱더 요구한다.

이것이 7장[:14]에서 바울이 율법을 영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율법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면 우리의 행위는 그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기 때문에 영적이다. 하지만 율법이 영적이기 때문에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내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한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며, 이 영은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요구들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행하고자 하는 진정한 소원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은 두려움이나 강제 아래에서가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행해진다. 그러므로 율법은 영적이기 때문에 율법이 영적인 마음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율법이 그러한 유의 마음을 요구할 때 그 영이 우리 마음 속에 있지 않다면 죄는 그대로 존재한다. 율법 자체는 옳고 선하고 거룩하지만 율법에 대한 적대감과 불평 불만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율법이 명하는 것을 행하는 것과 율법을 성취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와 힘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율법에 의해 요구된 행위들을 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든 행위들은 우리가 율법을 싫어하며 율법을 속박이라고 느끼는 한 헛되며 소용없다. 이것이 3장[:28]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이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학교에서 논쟁을 일삼는 궤변론자들이 우리에게 행위를 통하여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우리를 그릇 인도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마지못해서 선행을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가 그런 행위들을 통하여 스스로 선하게 될 준비를 할 수 있겠는가? 마지못한 적대적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까닭이 있겠는가?

율법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요구사항들을 기쁘고 사랑스럽게 충족시켜야 한다. 마치 율법이나 그 형벌들이 존재하지 않는 양 율법에 대한 속박감을 느끼지 않고 덕스럽고 올바른 삶을 살아라. 그러나 이 기쁨, 이 속박받지 않는 사랑은 성 바울이 5장[:5]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진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의 첫 단락에서 말했듯이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믿음 자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통해서만 온다. 이 복음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한다. 바울이 3,4,10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분이 사람이었는데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고 선포한다.

우리는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며 율법을 성취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 얻어진 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영은 우리에게 율법이 목표로 하고 있는 행복과 자유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선행이 진실로 믿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정죄한 후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성취한다고 말하고 있는 3장[:31]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