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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Nov 03, 2017 03:35 AM EDT

preach in the desert

프랑스 남쪽 세벤느(Cévennes) 지역에는 광야 박물관(Le Musée du Désert: www.museedudesert.com)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종교개혁 당시 프랑스의 개신교도들이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숨어 신앙 생활하던 곳으로 매우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이 박물관은 당시 개신교도들이 수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음을 자세히 보여준다.

종교개혁이 루터에 의해 본격적으로 일어나자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도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먼저 요하네스 판 덴 에센(Johannes van den Esschen) 및 하인리히 포스(Heinrich Vos)가 1523년 7월 1일 브뤼셀에서 화형을 당했다. 루터는 이들을 기억하면서 1523년에 특별한 찬송(Ein neues Lied wir heben an)을 작사하기도 하였다. 이 찬송에서 루터는 이 순교자들을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인이라고 고백한다. 두 순교자들은 어거스틴 수도회에 속한 수도사들로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외치면서 교황이나 교부들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를 더 높이자 종교재판을 받아 화형에 처해진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당시 비텐베르그에 머물며 루터에게 배웠던 하인리히 폰 쥐트펜(Heinrich von Zütphen)이 안트베르펜에 머물 때 이 두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5년 후에는 동료 람베르트 토른(Lambert Thorn)도 옥중에서 순교한다.

하지만 개신교 평신도들이 박해를 받은 것은 아마도 프랑스가 가장 심하지 않을까 한다. 특별히 세벤느 지역에 살면서 저항운동을 하던 위그노들을 까미사르(Camisards)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기원은 그들이 입던 옷 또는 그들이 밤에 기습공격을 하는 전략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이 박물관은 당시 이 군인들을 지휘하던 롤란드(Roland)라는 장교의 집을 개조한 것이다.

개신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던 낭뜨 칙령(1598)이 1685년에 루이 14세에 의해 철회된 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받을 때(1789)까지 약 백 년간 이들은 광야에서 숨어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까미사르들은 전쟁도 불사하여 1702년부터 1715년까지 많은 전투를 치렀으며 마침내 1787년 11월 7일에 관용의 칙령(Édit de tolérance)라고 불리는 베르사이유 칙령(Édit de Versailles)이 발효될 때까지 수많은 성도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성도들은 저녁에 가정마다 성경을 읽었는데 식구들 중 한 두 명은 멀리 감시하면서 누가 오지 않는지 늘 보초를 선 것을 재현해 놓았다. 그들이 숨어 지내던 골짜기에서 함께 모여 '광야 교회'로서 예배 드리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는데 매우 감동적이다. 설교단은 이동이 용이하도록 모두 조립식이었으며 심지어 성찬 기구들도 분리가 가능하도록 고안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프랑스 개신교회 성도들은 일 년에 한번씩 이곳에서 야외 연합예배를 드리며 과거 믿음의 선조들이 당했던 고난을 기념하고 있다.

가톨릭 군인에게 잡힌 개신교도들 중 5천명의 남자들은 대부분 갈리선이라고 하는 노예선에서 평생 노를 저어야만 했다. 놀라운 것은 이 박물관에 이렇게 노예로 잡혀가신 분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한 벽면에 빼곡히 적어놓았다. 프랑스의 가장 남쪽 지역인 랑에독(Languedoc)의 에귀-모르(Aigues-Mortes) 지역에 있는 꽁스땅스 탑(la Tour de Constance)이 감옥으로 수많은 개신교 여성들이 갇혀 있었는데 그 중 마리 뒤랑(Marie Durand)이라고 하는 자매는 19세에 갇혀 38년 간 이곳에서 신앙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지금 누리는 우리의 개혁 신앙이 결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앞서간 선배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면서도 믿음을 지킨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히11:38)이었음을 가슴에 새기며 그들의 개혁 정신을 새롭게 계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