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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공, 위대한 비전의 세계 선교사로

Nov 19, 2017 08:59 PM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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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인도 선교사로 떠났던 영국의 구두수선공 윌리엄 캐리(William Carrey)에 의해서 감추어졌던 선교의 비밀이 영국 교회에 알려지면서 현대선교가 시작되어 위대한 선교의 세기(the Great Century)가 열렸다.

윌리암 캐리는 1761년 영국 노스햄프톤(Northampton) 작은 마을에 윌리암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라난 전형적인 촌사람이었다. 당시 문맹률이 매우 높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공부에 대한 강한 욕구와 끈기로 글을 깨우쳤다. 당시는 두발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구두수선은 전도 유망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캐리는 아버지의 압력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구두수선공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1779년 캐리가 19살 때, 한 기도모임에서 히브리서 13장 13절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는 말씀을 통해  심령으로 깊이 깨닫게 되어 그 동안의 세상과  타협하면서 산 신앙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하겠다고 분명한  결단했다.

그 후 그는 그 어느 것보다도 성경공부에 전념하고 침례교에 들어가 활동하여 평신도 목회에 주력하였다. 캐리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해 많은 공부와 히브리어, 헬라어, 화란어, 불어 공부도 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강한 욕구가 남달랐던 그는 교사생활과 구두 가게를 같이 하여 모두 안팎으로 충실했다.  결국에는 1783년 23세의 나이에 침례교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그 당시 영국은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가 이끄는 영적 부흥운동이 전 영국을 뜨겁게 휩쓸고 있었으나,  아무도 세계선교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었다.  캐리도 목회에 전념하느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캐리는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며  태평양의 많은  섬들과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삶에 대해 자세히 쓴 "쿡 선장의  항해기 (Captain Cook's Voyages)' 라는 책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인의 외침과  " 아무도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명예도 유익도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라는 대목에 가슴이 뜨거워져 그의 시야를 세계로 돌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캐리는 교회 역사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이미 알려진 나라의 인구, 종교등을 표시하며, 선교적 관점으로 성경을 개발해 매일 세계 선교정보들을 모아 선교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교회는 선교는 예수님이 사도들에게만 주신 특별한 사명으로 국한시켜며 식민지 사업과 관계가 없는 세계선교는 감히 생각치도 못했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선교에 눈을 뜨게 된 캐리는 세계선교에 무감각한 교회를 일깨우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예수님의 유언적 명령이 곧 우리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을 믿고  세계선교에 대한 원대한 비전과 성령의 불은 타오르게 되었다.  해외선교는 교회가 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792년 봄 그는 '이교도 개종에 대한 크리스천의 의무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통해 세계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와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당시  이 책은 루터의 95조항과 함께 베스트 셀러가 되어,  뜨거운 세계선교열풍을 전 유럽으로 확산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후 캐리는 침례교회연합회 모임에서 이사야서 54:2,3 '네 장막터를 넓히라.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것임니라' 말씀을 여러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원대한  비젼을 심어 주었다.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   그 다음날 감동과 도전을 받은 목사들이 새로운 선교회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침례교 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였다.

1793년 캐리가 32세 되던 해,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하자, 그의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와  그리고, 그의 목회지인  하비레인 교회의 성도들도  캐리와 같은  훌륭한 목회자를 잃는다는 생각으로  완강히 반대했으나, 곧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기도로 지원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사랑하는 가족 모두와 처제, 그리고 토마스라는 선교 동역자와 함께 인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침례교 선교위원회가 파송한 최초의 인도 선교사가 되어  인도땅에 도착했을 때, 인도는 선교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혹시 선교사역 때문에 상업적 이익에 손해를 볼까 두려워하여 선교사역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동인도 회사가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

1794년 캐리는 무드나배티 지방의 인디고 공장에서 감독으로 취업의 길을 열어 주어서  이전까지의 연봉의 5배를 받게 되어 자비량 선교를 하고 번역을 위해 돈을 저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본국의 선교회를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고자 하여 자비량 선교의 본을 보였다. 

세람포에서의 선교사역의 성공은 그의 덕 있는 인격이 첫째로 작용한 결과였다.  물질적인 희생을 감수하고 모든 것들을 희생하는 그의 태도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는 넉넉한 인격이 선교사역을 넓혀 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캐리는 성경번역과 더불어 말씀을 전파하고 또 여러 학교를 세웠다.  그렇게 벵갈에서 7년간 땀 흘렸지만 단 한 명의 인도인 개종자가 없었다. 그러나 회개와 변화의 역사가 줄기차게 일어나 그 후 18년간 600명이 세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큰 업적중의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과 복음 전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람포 대학(Serampore College)을 세운 것이었다.

1800년 공장을 정리하고 덴마크의 영지인 세람포르로 옮긴 캐리는 공동생활이 선교에 여러가지로  효과적이라고  확신하고 여러 가족을 한 공동체로 묶어 공동사역을 시작하였다. 캐리와 워드와 마쉬만 그리고 케리는 세람포르의 삼총사라 불리웠는데, 23년간 팀을 이루어 서로간의 긴밀한 사랑의 교제로 힘을 얻으며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다. 

대형화재로 인해 수년간 작업한 것이 소실되었으나, 삼총사는 팀웍을 새로이 갖추고 다시 도전하여 믿음으로 낙망치 않고 도전하여 결국 수 많은 중국어, 버마어, 말레이어등 44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 출판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 힌두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성경을 벵갈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계속했다. 캐리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인도 종교경전들을 조사하여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과 과부들을 부당하게 죽이는 사티제도도 폐지시켜 나쁜 관습을 폐지하고 좋은 전통을 계승시켰다. 캐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함으로 인도선교의 기초를 쌓았다.

캐리는1834년 73세의 일기로 그토록 사랑했고 헌신한 인도 땅에 묻혔다.  윌리암 캐리는 그의 그칠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과 끈질긴 도전으로 18세기의 타락한 영국을 구원하였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영국을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로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리라는 그의 거대한 믿음과 선교의 뜨거운 열정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세계선교의 불을 당기었다. 인도에서 그가 썩은 밀알이 된 헌신된 삶을 통해 근대 선교 역사가 시작되었고 19세기 선교황금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성취하라" 

 Expect great things for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캐리는 자신의 뜻에 따라 다음과 같은 말을 자신의 묘비에 새겨줄 것을 부탁했다.

"윌리엄 캐리, 1761년 8월 17일 생, 여기 잠들다. 
가엾고, 불쌍하고, 무력한 벌레 같은 인간, 당신의 친절한 팔에 안기나이다." 
그는 임종의 자리에서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었을 때, 캐리 박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를 말게. 
캐리 박사의 구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출처 | KC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