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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The Discipleship)

Jun 28, 2018 09:11 A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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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9: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9: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성경에 '제자'라는 말이 269번 나온다고 한다. 특히 신약성서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이 단어가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이어서 가는 사도와 제자의 믿음과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제자는 그리스도의 길이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아가는 문이다. 예수의 제자 된다는 건 뭘 의미하는 것인가? 마가복음 8장과 누가복음 9장으로 제자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9: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누가복음의 기록은 예수님과 세 부류의 사람들과의 문답을 통해서 제자도를 좀더 자세히 풀어주고 있다. 예수를 믿고 제자로서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이런 문제들과 부딪친다는 것이다.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런 것들을 극복할 수가 있느냐고 물으신다. 그리하면 나의 제자가 되리라.

9: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가운데 '아골 골짝 빈들에도 오직 주만 따르리다' 라는 내용의 찬양이 있다. 어떤 어려운 곳이라 할지라도 환란의 길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라도 내가 갈 수 있다는 대답으로 제자의 도를 다지는 것이다.

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그 첫 번째는 무소유다. 네가 과연 소유욕을 극복하고 살 수 있느냐? 유명한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인 <To Have or to Be?>에서 과도하게 소유에 집착하는 세태를 지적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강한 욕망이 소유의 욕망인데, 이것을 우리는 과연 내려놓을 수 있는가? 우리는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참으로 쉽지 않는 이것을 적어도 우리의 삶의 기저에 두고 살 때 주의 제자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는 그렇게 살았다. 소유에 매이지 않고 넘어서게 되면, 소유 때문에 불화하거나 환란 혹은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정시 기도 시간에 성전을 오르는 제자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와 같이 제자들 안에는 없는 것과 그물과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던 버림의 세계가 있었다. 탐욕스러운 세상에서 지친 영혼에게 예수의 제자도의 가르침은 신선한 샘물과도 같은 충격을 준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To Be, 즉 본질이 먼저다. 주와 객이 전도되어서 비본질적인 것이 마치 모든 것인 것마냥 살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는 기록된 말씀으로 물질의 시험을 이기셨다. 주님과 열 두 제자들, 사도들의 고상한 삶과 정신을 이어가는 진정한 주의 제자들이 되길 원한다.

9: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두 번째는 천륜이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예수님의 급진적(radical)인 가르침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중요한 도리는 아비의 임종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라니, 말씀의 이면을 보지 못하면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매정한 것처럼 보인다.

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주께서는 인륜과 개인의 급박한 사정을 넘어서서 네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 이것은 요청이다. 인륜을 넘어선 더 큰 하나님의 긴박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어려운 것은, 일차원적인 관계성 즉 혈육을 가장 우선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떠남이 안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혈연과 지연, 내 자식 내 혈육을 넘어서지 못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소개하시는 더 큰 가치와 더 크고 아름다운 세계를 이룰 수 없다. 교회는 그런 곳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영적인 가족이 되고 형제가 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제자도를 보면서 우리를 향한 부르심 속에 귀함을 다시 보게 된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관계성을 넘어서자면 아픔이 따른다. 예수님이 바로 대표적인 분이다. 천국 복음에 대한 비유를 가르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12: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12: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12: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주님의 헌신은 이런 희생의 터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주의 제자 됨도 그렇다. 깨고 나와야 하는 쓰라림이 있다. 그리고 더 큰 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제사는, 지연과 혈연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더 큰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뒤에 남겨 두고 떠났기에 더 진지해야 하고, 버림과 아픔이 있기에 더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주님께서 반인륜적인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최고의 고통의 자리, 마지막에 목숨이 조금 남아있는 극한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제자에게 자기의 모친을 맡기셨다.  

눅 9: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제자도의 마지막은 즉각적인 순종이다. 이 말씀은 그 유명한 엘리야의 이야기와 오버랩 된다.  

왕상 19: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19:20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9: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엘리야가 엘리사를 처음 부를 때 엘리사는 자기 소를 부려 밭을 갈고 있었다. 그는 소를 잡고 쟁기를 불태우고 부모에게 가서 작별을 하고 나서 엘리야의 제자가 되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친숙했던 전설적인 이야기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것보다도 네가 사는 수준이 더 높을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우리는 전설과도 같은 엘리사의 헌신보다도 더 즉각적이고 더 단호하게 이 길을 가고 있는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수많은 이들이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갈다가 뒤를 돌아보거나 다시 돌아가는 위기를 수없이 경험한다. 내가 가는 길의 의미와 부르심의 세계를 날마다 깊이 들여다보며, 주님의 물음 앞에서 "그러하외다"라고 대답하길 원한다. "주여, 내가 약해서 쓰러진다 할지라도, 적어도 끝까지 주의 말씀을 붙들고 그렇게 되고자 몸부림치겠나이다"라며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