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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Feb 25, 2020 12:02 AM EST

conf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날 택한 것이 아니요"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게 된 것은 그들의 결단과 소망 이전에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따라오게 된 것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다. 내가 원해서 너희가 지금 여기 있게 된 것이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7장 고별 기도에서 이어집니다.

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17: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이렇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제자들이 주님께 오게 되었습니다. 이 선택이란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이라. 너희가 날 안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알았고 택한 것이라...' 택함을 받았다는 것, 이를 알 때 우리가 다른 신앙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깨닫고 신앙의 길을 걷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길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흔들리는 갈대라고 하시고, 베드로에게 반석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반석 같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주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택과 예정을 알 때, 그것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주님의 전적인 자유와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미리 아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이 시작과 근원은 바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우실 때에도 한 명 한 명을 아시고, 또 밤이 맞도록 새벽까지 기도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지체가 된 것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택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계를 잘 알았습니다.

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그를 향한 부르심 속에 그의 사명과 뜻이 다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세계를 알게 될 때 우리가 사명을 붙들게 되고 주를 좇게 됩니다. 우리의 노력과 의지와 결단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것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많은 귀한 것을 뒤로 하고 주를 좇았다면, 그 이전에 주님의 선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늘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사도에 따르면, 그 선택이라는 것이 창세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세 전에 예정하사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세상 가운데서 부르셔서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게 된 것도, 우리의 믿음의 고백도, 전적인 성령의 은혜로 그렇게 하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작은 자라도 주께서 그를 아시고 부르신 선택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선택받은 자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남들은 못 받았는데 나는 받았다고 하는 유치한 우쭐거림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 안에 있는 기쁨은 사랑받은 자가 누리는 기쁨입니다. 큰 사랑을 받은 자 안에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먼저 부름 받아 택함 받아 사랑을 먼저 받았다는 것은 "나중" 받은 자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처음 익은 열매"가 있다면 "나중 익은 열매"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믿음의 길은 주의 한량없는 은총으로, 사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한 몸'이라는 것. 주님은 이렇게 당신이 열매를 맺을, 몸 된 지체가 될 자들을 하나 하나 선택하셔서 가지로 삼으셨습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열매 맺게 하려고 너희를 내가 가지로 택하여 불렀노라.' 우리 안에 열매 맺을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풍성한 열매를 바라는 소망을 두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모두가 다 열매가 되어서 주님께 열매를 드려야 할 가지로 부름 받았습니다.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지금 주님께서는 너희를 향한 선택은 나의 의지라고,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미움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를 파괴하고 훼손하는 큰 적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이 주님의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이 주를 죽인 것입니다. 죄악의 세계를 심판하시려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런 싸움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미워했듯이 너희도 미워하리라.' 믿는 자는 세상 속에서 이런 미움 받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미움 받으시고 죽으심 같이 진정한 빛의 자녀는 어둠에게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세상의 사랑을 받으려 하면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너희를 미워하리라. 그러나 이는 나를 먼저 미워한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있느니라.' 이 예정은 하나님 뜻 안에서의 예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의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도록 미워하고 핍박하리라는 것입니다. 죄악의 세상 가운데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핍박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세상의 눈을 의식하고 환대받으려 하지 않지 않습니까?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주님께서 받으셨던 모욕과 천대가 반드시 너희에게도 올 것을 분명히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의 길이란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아무도 찾지 않는 길, 그러나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우리가 따라가길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십자가는 자기 부정입니다. 죽음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는 제자직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도 하십니다. 처음에는 많은 자가 은혜롭게 따라오다가 제자의 길을 중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환란이 오면 믿음을 버리고 무너지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시작했다면 끝까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끝이란 바로 죽음, 십자가입니다. 믿음의 길은 생명이 달린 길입니다. 십자가 뒤에 영원한 생명, 부활이 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을 가보면, 그곳에 묻힌 자들을 통해 어떤 특별한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믿는 자들의 삶을 보게 됩니다. 사랑으로 기쁨으로 그 십자가의 길을 갔던 자들, 영원한 영광을 맛보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한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이 끝까지 갈 수 있었던 힘은 사랑으로 주와 한 몸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핍박받으면 주께서 받으시는 것이고 내가 모욕당하면 주님께서 당하시는 것임을 느끼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한 몸 된 지체, 주님과 우리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영광을 받으면 주님께서 먼저 받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길 바라는 것에서,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돌려드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리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시작부터가 뿌리가 아담으로 말미암은 죄악의 세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화려하고 위대한 문명을 이루었어도 뿌리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 15: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15: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15: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인간 안에 불경건godlessness의 죄성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불경건이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성이라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고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하지 않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참으로 하나되는 사랑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 그 죄가 밝히 드러나고 심판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죄를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고 주님을 못박습니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15: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성령께서도 증거하시고 우리도 주님을 증거할 자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증거는 우리의 입으로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라틴어 에반겔리움Evangelium은 승전보를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다...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시고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분이셨다는 이 승전보를 전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의 삶을 사는 것이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가 영광임을 알고 진정으로 이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가신 깊은 고난의 길을 우리가 함께 걷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영광의 깊은 사정이 주님의 마지막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함께 하지 못했으나 훗날 그 고난과 영광에 동참합니다. 고난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면 부활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주간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너희가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험한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기간이 되길 원합니다.

그 고통의 십자가를 달게 지실 수 있었던 주님의 이유가 뭡니까? 그것이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기에,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가벼워질 것을 아시고, 그것이 우리의 죄짐을 덜 것을 아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무한한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대속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주님 안에 이 십자가를 지실 때 영원한 생명,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십자가가 결정되었을 때, 부활 또한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고난을 경험할 때 흔들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에게 증언하십니다.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고. 고난은 사랑이고 그 뒤에 영원한 영광이 있다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삶 가운데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작게나마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라. 초대교회 안에 이러한 고난에 대한 해석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은 십자가와 부활 승천 뒤에 임한 영으로. 세상이 말하는 영과 다릅니다. 십자가와 부활 뒤에 열려진 성령의 시대, 성령께서 증언하시듯 십자가와 부활로 주님을 증언하는 성령의 사람이 다 됩시다.